갑자기 세상 모든 생물들이 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만한 크기의 닭, 고양이만한 개미와 대형견만한 말벌, 그보다 더 커다란 들쥐가 기승을 부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2미터가 넘는 거인이 태어난다면? 조금은 엉뚱한 상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SF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린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런던의 사범학교에서 저명한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를 만나 과학을 공부하게 된 저자는 SF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타임머신』, 『우주 전쟁』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04년 출간된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는 기존의 독창적인 상상력에 빠른 전개와 유쾌한 묘사, 철학적인 물음을 모두 겸비한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화학자 ‘벤싱턴’과 생리학자 ‘레드우드’는 생물의 성장주기 중 ‘휴지기(休止期)’를 없애는 약물 ‘헤라클레오포르비아’, 일명 신들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발견을 했지만, 스스로가 발명한 약물이 어떤 혼란을 야기할지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이들의 발명품을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는 ‘윙클스’와 대중에게 신들의 양식의 위험성만을 전하며 호도하는 ‘케이터햄’, 세상의 변화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일상만을 영위하려 하는 다수 시민들의 모습까지, 서술자는 세상의 변화를 한 걸음 뒤에서 관찰하며 유머와 풍자로 이야기를 전한다.
사회에 무관심한 과학자, 과학의 발전을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정치인, 사회의 흐름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는 기득권(귀족)과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 소시민까지. 유쾌한 서술로 쉽게 읽히지만 저자는 각 계층의 허위와 모순을 비판하며 ‘인간이 이 세계를 계속 살아갈 의지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돌려준다. 장엄하고 웅장한 스페이스 오페라도,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트렌디한 SF도 아니지만 참신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고전 SF만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보물 같은 소설.
책 속 한 문장
“우리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에 서 있어요. 지금 존재하는 그들의 세상은 신들의 양식이 만들어낼 세상의 서막일 뿐이에요.” - 2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