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적인 비전을 들고 현대시의 전경에 새롭게 등장한 판타지." - 저자 소개 中
변혜지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의 제목을 보고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떠올린 이용자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기시감처럼, 실제로 이 시집의 제목은 웹소설, 웹툰으로 판타지 독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전지적 독자 시점」의 작중작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묵시록과 현대적 신화, 판타지의 경계에서 사랑과 상실,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변혜지 시인의 시집입니다.
시는 어렵습니다. 작가의 메타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끝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서정시를 읽을 때는 아름다움과 감동에 몸을 실으면 될 따름이지만, 변혜지 시인은 그리 쉽게 자신의 세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 생의 고통을 마주하는 「내가 태어나는 꿈」부터, '있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자신을 일종의 상처로써 마주하는 「내가 되는 꿈」과 「쌍둥이」 등 그 저의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끝없이 침잠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시가 시집 속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이와의 공존을 꿈꾸는 듯한 시(「마침내 희재를 위한 세계를」, 「하늘과 땅 사이에 뭐가 있더라?」)를 읽을 때는 "그래, 역시 사랑을 이야기하는구나." 낮게 읊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변혜지 시인이 '묵시의 비전'으로 덤덤하게, 쓰라리게, 애달프게 써내려간 마흔다섯 편의 시. 마피아 게임을 모티프로 한 듯한 시도 중간에 한 편 숨어 있으니, 탐독 중의 여흥으로 찾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가 될 듯합니다.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예의 시가 궁금하신 분, 「전지적 독자 시점」과는 또 다른 멸망의 이야기를 읽고자 하는 판타지 독자분들, 평소에 시를 좋아하시는 분과 새로이 시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자 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책 속 한 문장
"종종 용서하지 못한 사람의 꿈을 대신 꾸었다.
나를 용서한 사람의 꿈을 대신 꾼 날은 몸이 아팠다." - 34p 「메리고라운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