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지상에서 벗어나 지하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류.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우정과 사랑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소년들의 이야기.
이 책의 저자인 천선란은 SF 단편집과 중편을 꾸준히 집필하던 중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수상 이후에도 식물과 이야기하는 소녀 유나인의 이야기 「나인」과 로봇 '고고'의 여정을 통해 인간다움을 다룬「랑과 나의 사막」 등 장편소설과 각종 에세이, 단편집 및 앤솔로지를 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나 거시적 사회 문제를 다루는 소위 '헤비한' SF와 달리, 인간과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을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노래하는 젊은 SF 작가의 선두에 서게 된 격이지요.
오늘 소개드릴 책은 천선란 작가가 CJ ENM의 '언톨드 오리지널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재 및 출간한 연작소설 『이끼숲』입니다. 정확한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작중 배경은 원인 미상의 식물 전염병으로 대부분의 나무가 고사한 뒤 인류가 지하로 추방된 미래 사회입니다.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지하 도시의 넓이는 한정적이기에 산아제한 정책마저 펼치고 있는 닫힌 사회. 그 속에서 여섯 소년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직면하기도, 미등록자로서의 삶에 좌절하기도, 도시 바깥의 삶을 갈망하기도 합니다.
소년 마르코의 첫사랑과 성장을 그려낸 「바다눈」은 아름다우면서도 지하 도시 속 열악한 노동환경과 착취의 모습이 현실과 다르지 않아 가슴 한 켠이 쓰려옵니다. 미등록자는 '폐기'되는 사회에서 좁은 집과 도시를 연결하는 환풍구에서 혼자만의 모험을 이어가는 의조의 이야기 「우주늪」은 분노와 죽음의 갈망, 그럼에도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에 무심코 그를 응원케 합니다. 표제작이자 상실의 슬픔, 그리고 소년들의 저항과 모험을 다룬 이야기 「이끼숲」은 천선란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극한 슬픔의 힘을 절절히 보여줍니다. 이 책을 쓰기 전,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은 그렇기에 저희의 폐부를 찌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여섯 소년의 이야기. 상냥하고 아름답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을 여러분께 추천드립니다.
책 속 한 문장
"사랑한다는 게 반드시 그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므로. 잠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충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186p